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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Berlin

동독 일상 뮤지엄, 무료 관람, Alltag in der DDR



(180119) 





베를린에는

다양한 문화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Kulturbauerei 문화의 양조장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건물로 이뤄져있고,

이 안에는 극장, 영화관, 클럽, 전시회장 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http://www.kulturbrauerei.de/


여기에 가면 다양한 행사 소식을 알 수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영어 버전은 지원하지 않는 듯합니다.








오늘은 

Alltag in der DDR 동독의 일상생활 

주제의 전시를 보기 위해

Kulturbauerei로 향했습니다.





오픈시간 : 10~18시 

※ 월요일 휴관, 목요일 연장 운영 10~20시


위치 : Knaackstraße 97 


무료입장







건물 입구에서 바로 전시회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터널(?) 아치(?) 아무튼 오른편에 뮤지엄으로 향하는 길이. 










로비로 들어서면

안내해주시는 분이 왼쪽으로 가서 계단을 올라가세요~ 설명해주고





왼편에는 이렇게 전시로 향하는 길이 있습니다.









전시는 독독에서의 일상에 관한 내용이지만

동독이 생겨나게된 역사를 간략히 만나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분단되게 된 과정과 독일의 분단이

그 전개가 너무너무너무 비슷해서

시작부터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됩니다. 














공산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노동, 노동, 노동!


Mein Arbeitsplatz ist mein Kampfplatz für den Frieden!

내가 일하는 공간은 곧 자유를 위한 투쟁장소이다!





두 가지 상념이 들었는데


1. Arbeit macht frei

나치 독일이 유태인들에게 강요했던 이 기만적이고 모순적인 말.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가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고



2. 자유를 논하는 캐치프레이즈와 철조망의 대비를 보며

자유와 의무(통제)가 어떻게 적절하게 이뤄져야 하는가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라는 개념이 너무나도 생소하던 시절에

정치인들은 그 개념을 지나치게 잘못 사용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환상에 너무 쉽게 젖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요주인물 관찰 보고서








아이들도 전체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정말 북한이 생각나는 사진)








뭔놈의 전쟁을 이리도 좋아했던지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해 자꾸 투쟁하자고 외치던 포스터들










노동도 중요했지만

휴가도 있었던 독일민주공화국(DDR,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의 일상


당시에는 휴가로 캠핑 붐이 일었었는데,

대신 일괄적으로 생산되는 자동차를 타고 

(이 차를 갖기 위해서는 몇십년씩 기다려야 했다고)

일괄적으로 생산되는 텐트를 싣고 캠핑장으로 향했다고 하네요.





휴가와 관련해서 놀랐던 점은

휴가도 노동동지들과 함께 갔어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

직장동료들과 휴가까지 함께 가야 한다니...........................

넘나리도 소름인 것











모든 사회생활도 감시당하는데,

더 소름끼치고 우울하게 느껴졌던 것은,

어떠한 조직에 의한 감시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끼리 서로 감시하는 체계가 있었던 것.



집에 누가 오면,

그 사람의 개인정보와 방문목적, 시간 등을 기재해서

근처 경찰서에 24시간 안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게 흘러간다고 느꼈던 것은,

통제를 넘어서 생겨나는 진정한 자유와 인간적인 삶을 향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열망은 강해져왔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영화입니다.




당시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SED)은

개인의 예술 활동도 국가에 의해 통제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강화하기 위한 예술활동을 지원했는데,

이 미니 영사기를 통해 틀어진 대부분의 영화들은

국가의 의도와는 달랐던 것들이었다고 하네요.








동독사람들은 또한 

만성적인 품귀현상에 시달렸습니다.

자동차며, 집이며, 무료로 받을 수 있었지만

자동차 하나 받으려면 15년, 20년정도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그 대가가 직접 나에게 오지 않는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할까요?



인간의 이기심이 긍정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게 한 것이

공산주의가 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튼 물건은 항상 부족했지만 그래도 먹고 살아야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동독식 중고나라를 이용하거나,





제2의 시장을 적극활용했다고 하는데요,

제2의 시장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이뤄지는 시장입니다.





동독과 서독의 관계는

지금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보다는 좀더 유연했습니다.

가족이 동독이나 서독에 있다면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Intershop 이라는 이 마켓은

처음에는 서독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샵의 개념이었습니다.

동독에서는 이런 것도 만든다! 를 자랑하고 싶었던 거겠죠.

그러나 동독 내부의 물건 부족 현상이 너무 심해지자, 

동독 사람들도 Intershop에서 물건을 구입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오직 서독 머니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제 2시장은 GENEX

이 마켓은 서독에서 동독의 친척들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운영되던 시장입니다.



GENEX 매출의 72%를 자동차가 차지했다고 합니다.


동독 사람들은 자동차도 공짜로 받을 수 있었지만

생산이 너무 느려서 20년 정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서독의 친척들에게 자동차를 사달라고 했다고 하네요.



인민(국민)의 삶보다는

외부로의 체제 선전과 돈줄트기에 급급했던 너네는

망할만 하다.







사진의 위에는 친척에게 선물을 부탁하는 편지가 전시되어 있고,

아래는 GENEX의 카탈로그들






그 외에도 

동독의 주거문제, 패션 등 일상과 관련된 다양한 물건을 보고

관련된 스토리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북한관련 이슈가 많아서 그런지

전시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구성도 좋고

단순 이론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봤던 것, 썼던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루한 뮤지엄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었던

내 인생 뮤지엄으로 인증!